조선일보 위클리비즈 – 골드만삭스 피소사태의 재구성

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투자자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나

“손실 나기 쉬운 투자상품 만들어 놓고 그 사실 숨긴채 투자자 모집”

☞골드만삭스 피소 혐의

① 고객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헤지펀드의 존재를 감추고…
② 그 헤지펀드에 상품개발 맡기고…
③ 그 펀드가 고객편이라고 거짓말…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불린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건재를 과시하면서 일인자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그런 골드만삭스가 요즘 궁지에 몰렸다. 지난 2007년에 판매한 ‘애버커스(ABACUS) 2007-AC1′이라는 이름의 파생금융상품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골드만삭스가 이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과정에서 고객들을 속여 대규모 손실을 입혔다며 골드만삭스를 증권거래법상 사기 혐의로 제소했다. 제소 사실이 알려진 지난 16일 골드만삭스 주가는 하루 만에 13% 폭락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미국에 이어 영국 금융감독청(FSA)도 골드만삭스의 사기 혐의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AIG 등 다른 금융회사들도 골드만삭스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내막을 알려면, 5년 전 월스트리트의 한 이름 없는 헤지펀드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폴슨과 골드만삭스의 ‘치명적’ 만남

2005년의 어느 날,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Paulson)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주택시장이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가 창업한 헤지펀드 ‘폴슨앤컴퍼니(Paulson & Company)’의 성적은 초라했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버블투성이였다. 그는 이를 이용해 돈을 벌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는 파올로 펠레그리니(Pellegrini)라는 부하 직원에게 “곧 버블이 꺼질 것 같은 시장을 찾아보라”고 했다. 버블이 꺼진다면 ‘쇼트(short·매도)’ 전략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펠레그리니가 찾아낸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시장이었다. 그는 사상 최고치에 달한 미국의 주택과 서브프라임모기지 가격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 냈다. 그 즉시 폴슨과 펠레그리니는 주택 가격이 떨어질 경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은 CDS(신용부도스와프)라는 파생금융상품이었다. CDS는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한다. 예컨대 어떤 채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채권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걱정된다면, 그 채권에 대한 CDS를 사들이면 된다. 만일 채권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실제로 벌어지면 CDS를 판 쪽에서 대신 돈(일종의 보험금인 셈)을 지급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CDS는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놓고 일종의 ‘도박’을 벌이는 데도 이용된다. 만일 어떤 채권의 부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면 그 채권에 대한 CDS를 사면 된다. CDS의 매입 비용은 보험료처럼 상대적으로 소액이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폴슨은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대상으로 한 CDS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주택담보대출에 채무불이행사태가 생길 가능성은 다들 크지 않게 봤기 때문에 CDS 가격은 매우 쌌다. 만일 주택 가격이 폭락하면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못 갚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고, CDS 가격은 폭등할 것이다. 자동차 사고율이 높아지면 보험료가 높아지는 이치와 비슷하다. 그때 CDS를 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폴슨은 판을 키워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놨다. 100여개의 서브프라임모기지를 묶어서 재구성한 파생상품인 CDO(부채담보부증권)를 대상으로 한 CDS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CDO라는 상품은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번에 보다 큰돈을 베팅할 수 있다. 문제는 당시만 해도 CDO를 대상으로 한 CDS 상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폴슨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새 상품을 스스로 개척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2006년 대형 투자은행들을 찾아다니며 새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하나가 골드만삭스였다. 골드만삭스로서는 새로운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골드만삭스는 이듬해 2월 총 90개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로 구성된, 문제의 ‘애버커스(ABACUS) 2007-AC1′을 내놓았다. CDO의 일종이다. 이 상품은 독일의 중견 은행 IKB와 ACA캐피털 등이 사갔다. 골드만삭스는 다른 한편 이 CDO를 대상으로 한 CDS 상품을 폴슨앤컴퍼니에 팔았다.

자, 이제 IKB·ACA캐피털과 폴슨앤컴퍼니의 이해는 정반대가 됐다. 만일 CDO가 부도나지 않으면 IKB 등이 돈을 벌고 폴슨은 손해를 본다. 반면 CDO가 부도나면 반대로 IKB 등이 망하고 폴슨은 횡재를 한다. 물론 골드만삭스는 어떻게 되든 양측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2007년 여름, 하늘은 폴슨의 편을 들어줬다. 미국의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썩어들어가자, 이것들로 구성된 CDO도 썩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가 만든 CDO(애버커스)에 포함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의 99%가 나중에 휴짓조각으로 변하고 만다.

덕분에 CDO에 대한 CDS를 사들인 폴슨은 투자액의 100배인 약 10억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대박’을 터뜨렸다. 반대로 IKB와 ACA캐피털 등은 문제의 CDO에 약 10억달러를 투자해 원금 대부분을 잃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는 돈을 벌고, 누구는 돈을 잃는 얘기는 금융시장에서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뭐가 문제였기에 SEC는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했을까. SEC는 지난 16일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크게 3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사기 혐의를 둘러싼 쟁점

첫째, 골드만삭스가 문제의 CDO(애버커스)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에게 그 상품의 가격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폴슨앤컴퍼니라는 CDS 투자자(쇼트 투자자)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SEC는 이것이 “고객에게 중요 투자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misrepresent)”이라고 보고 있다. SEC는 총 22페이지의 소장(訴狀)에서 “폴슨앤컴퍼니 같은 쇼트 투자자가 반대 방향의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IKB 같은 경험 있는 투자자들이 골드만삭스의 CDO 상품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둘째, SEC는 더 나아가 문제의 CDO를 만드는 과정에 폴슨앤컴퍼니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떤 물건의 값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사람이 그 물건의 제조 과정에 직접 참여한 셈이다.

SEC의 조사에 따르면 폴슨앤컴퍼니는 이 CDO 상품의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007년 1월과 2월 사이, CDO를 구성하는 총 90여개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중 60여개를 추천했다. 폴슨앤컴퍼니는 그로부터 한 달 뒤엔 바로 이 CDO의 가치가 하락하면 돈을 버는 CDS란 상품을 골드만삭스로부터 사들였다.

정황상 폴슨앤컴퍼니는 CDO를 구성하는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의도적으로 나쁜 것으로 채울 동기가 생기게 된다. 한마디로 고양이가 생선 가게를 맡은 꼴이다. SEC는 골드만삭스가 이런 의혹을 없애기 위해 제삼자를 끌어들였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CDO 상품의 설명서와 홍보 자료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 평가 전문회사인 ACA사가 CDO 포트폴리오 선정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은 폴슨앤컴퍼니가 상품 개발을 주도했지만, 겉으로는 ACA사가 ‘얼굴마담’으로 참여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이다.

셋째, 앞서 설명한 것처럼 폴슨앤컴퍼니는 문제의 CDO 가격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상품(CDS)에 베팅을 했다. 그런데도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에게는 반대로 “폴슨앤컴퍼니가 (CDS가 아니라) CDO에 투자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다.

SEC 조사에 따르면 당시 골드만삭스에서 CDO를 담당하던 약관 28세의 직원 패브리스 투르(Tourre)는 ACA에 폴슨앤컴퍼니가 추천한 서브프라임모기지 리스트를 주면서 폴슨앤컴퍼니 역시 CDO 상품에 투자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따라서 ACA는 폴슨앤컴퍼니 역시 CDO 투자자 중 하나라고 믿고 폴슨앤컴퍼니가 추천한 서브프라임모기지들을 의심 없이 CDO에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관계사인 ACA캐피털까지 끌어들여 CDO에 투자했다고 SEC는 밝혔다. SEC에 따르면 패브리스 투르는 본인 스스로도 예의 CDO 상품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2007년 1~2월 사이에 그가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려 하고 있어. CDO 비즈니스는 죽었고, 우리가 빠져나갈 시간이 얼마 없어.”

■골드만삭스의 반론

물론 이 같은 SEC의 주장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펄쩍 뛰고 있다. 우선 첫 번째 문제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파생상품 거래에는 늘 ‘쇼트’ 투자자들이 있기 마련이며, 그런 투자자가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당연시되어온 관행”이라고 반박한다. 골드만삭스는 또 “당시만 해도 폴슨앤컴퍼니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헤지펀드였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폴슨앤컴퍼니의 관련 사실을 알렸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됐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CDO에 어떤 서브프라임모기지를 포함시킬지를 놓고 폴슨앤컴퍼니와 협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최종적으로 CDO에 포함될 서브프라임모기지들을 확정한 것은 ACA였다”면서 “따라서 상품설명서 등에 CDO 포트폴리오 선정사로 ACA사만 언급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세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면서 혐의 자체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또한 문제의 거래를 중개하면서 1500만달러의 수수료를 벌어들였지만, 스스로도 문제의 CDO에 투자해 9000만달러의 손실을 봤기에 스스로도 피해자의 하나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거래에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일반투자자들이 아니라 IKB나 ACA캐피털처럼 전문성을 갖춘 기관투자가들이었다는 사실은 골드만삭스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법에 따르면 금융상품 판매자들은 전문 투자자에 대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의 보호 의무를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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